[인터뷰] 마음을 그리는 화가 김수연 ..... '심안' 특선 수상 인터뷰

시작하며
한때 한국 영화계의 중추 배우였던 김희라씨의 아내이자 역시 같은 시절 막강한 경쟁률을 뚫고 여배우로 발탁돼 배우의 길을 걸었던 김수연. 오늘 나이를 의심케 할 새로운 도전으로 대중 앞에 선 ‘화가 김수연’을 모셨다. 수상작 ‘심안’과 함께 작품 속에 녹아 있는 김수연이라는 한 여인을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본다.

▲ 화가로 새롭게 대중 앞에 선 김수연 작가.



먼 길 바쁜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린다. 늦었지만 특선 수상을 축하드린다.

크게 늦은 건 아니다. 상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지금도 간혹 축하 연락을 받고 있다. 다만 아는 기자분들은 이미 다 연락을 주시긴 했다. (웃음)

다방면으로 출중한 탤런트를 지니셨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나, 돌연 화가 타이틀에 그것도 특선이라니. 깜짝 놀랐다. 연세를 어쭤보지 않을 수 없는데....

올해 71이다. 할머니라는 거 잘 안다.

믿기지 않아 여쭤본 것이다. 새로운 도전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인지.

작년 8월 우연한 자리에서 지인 한 분으로부터 그림을 그려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있었다. 친한 사이여서 웃고 말았는데, 며칠 뒤 한 분을 소개시켜 주더라. 서양화가이신 남기희 교수님이셨는데, 남교수님 권유로 그 자리에서 난생 처음 붓을 잡았다. 아무 것도 모르는 나였기에 그저 마음에 맡겨 붓을 움직였고, 다 끝나고 나니 눈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당시 남교수님께서 잠재된 자아가 나타난 것이라 평을 주셨다. 그러면서 계속 그림을 그려보라 권유해주셨고, 그 후 지금까지 교수님의 가르침 아래 활동하고 있다.

▲ 작가의 첫 작품 (생애 처음 붓을 잡은 날 그린 작품).


입필이라고 해야 하나, 첫 붓을 잡고 난 이후 활동이 어떠셨는지 궁금하다.


붓을 잡고 남교수님의 가르침이 시작된지 불과 일주일 후인 9월 7일에 조계종의 금산 큰스님과 인사동갤러리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이를 계기로 화가로서 첫 걸음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에 전념하게 됐다. 10월에 앙데팡당 국제예술제에 20점을 전시하게 됐고, 이후 11월 말에 대한민국 현대조형미술전에서 특선이라는 영광을 얻기까지 했다. 올 23년 1월 11월엔 인사동 라메르 갤러리에서 개최된 감성미술제에 또 한 번 전시회를 가졌다.

폭풍처럼 활동하셨는데, 특선 수상 시점이 작년 11월이면, 8월에 붓을 처음 잡고 불과 3개월 만에 수상까지 하셨다. 비결이 뛰어난 스승 때문인 것인지 제자가 특별한 소질을 지녀서인지......

뛰어난 스승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뛰어난 재능의 제자는 아니지 싶다. 다만..... 음, 난 전문 작가분들처럼 철학이나 주제 더 나아가 어떤 형이상학적인 의미 같은 건 모른다. 붓을 처음 잡고 교수님 앞에서 테스트를 받을 때 내 손이 가는 대로 그렸던 것처럼 모든 이성적 지식적 그물들을 거둬낸 채 오직 내 마음과 본능 그것에 의존해 붓을 움직여 나간다. 비결라면 아마도 내 마음의 울림을 화폭에 꾸밈없이 담아냈기 때문이 아닌지 싶다. 물론 그렇다 해도 뛰어난 스승과 주변 지인분들의 도움이 필수 전제가 됐을 때 얘기다.

특선 ‘심안’은 어떤 의미의 작품인지.

▲ 김수연 작가의 특선 수상작 '심안'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고 나면 그 안에서 공통된 요소 하나를 발견한다. 바로 ‘눈’이다. 처음 붓을 잡았을 때 남교수님께서 잠재된 자아라는 평을 주셨는데, 이후 한 점 한 점 그림을 그려나가면서 그림 속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눈’이라는 것이 내가 이 세상에 말하고 싶은 나, 동시에 오래 전부터 내 자신에게 꼭 말하고 싶었던 내가 아닌가 하는 깨달음이 조금씩 들기 시작한다. ‘심안’이라는 작품은 그러한 작은 깨달음을 담아낸 작품이다.

혹시..... 지난 과거의 삶과 연결돼 있는가.


(작은 미소) 잘 아시겠지만, 한때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남자가 워낙 유명한 인물이다보니 혼자 소유하는 데 따른 필연적 그림자리라 생각하면서도, 그 대가는 감내할 수 없는 아픔이었다. 지금에서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지만, 당시엔 그 대가라는 게 한 남자의 여인으로서도, 엄마로서도, 그리고 잠시나마 대중 앞에 있었던 배우 김수연으로서도 정말이지 그 어떤 형벌보다 가혹한 것이었다. 탈출할 수 없는 수용소에 웅크리고 있는 죄수라면 맞을까. 불을 모두 끈 채 어두운 거실에 혼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 가혹함은 육체로 나타났는데, 귀가 전혀 들리지 않게 됐다. 마음의 아픔 정도가 청각을 잃어버릴 정도였던 것이다. 교수님의 평가, 그리고 지금 내가 내 그림을 보며 깨달은 바가 틀리지 않다면 내가 그린 심안은 바로 그때의 나인 것 같다. 아무도 모르게 감추어두었던, 이젠 잊었고 다 지나갔지 했던 그때의 내가 내 안에 나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고 있었던 것이다.


짧은 기간에 폭풍처럼 움직이셨고 좋은 성과를 이루었던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가족분들 반응은 어떠하신지.

모두 적극적으로 응원해주고 있다. 처음엔 듣는 둥 마는 둥 립서비스 식으로 ‘그래 잘 해봐’ 하셨던 남편(영화배우 김희라씨)까지 이제는 든든한 응원과 지지를 해주고 있다. 남편으로부터 오랜만에 주부가 아닌 사회인으로 인정도 받고, 손주들도 할머니가 화가가 됐냐며 좋아하더라. 그런 부분이 날 가장 힘이 나게 만든다.

대체적으로 색이 강하다. 최근들어 작품에 기조 변화가 있는 것인지.

핫핑크색을 말하나본데, 그것 역시 의식적 설명이 불가능하다. 내 본능이 선택한 것이다. 남교수님께서 티벳이라는 국가의 색상을 연상케한다 하시는데, 그 색을 쓰면 마음이 후련해진다. 감각이 살아나고 상쾌해진다. 본능이라는 말 외엔 어떻게 설명드릴 수가 없다. 과거의 숨기고 싶었던 시간의 강한 표출일 수도 있고, 천성으로서의 본래 나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또 한 번 나를 찾았다는 사실이다.


▲ 작업실에서 작품과 함께 하고 있는 김수연 작가.



앞으로의 계획, 어떤 화가로 자리 잡아 가고 싶으신지

그 역시도 명쾌한 답을 드릴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훌륭한 전문 작가분들은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철학이나 신념 어떤 주제가 있다. 그러나 대단히 민망하게도 난 그런 걸 잘 모른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은 단 하나, 마음이다. 붓이 움직인다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는데, 마음에 손을 맡긴다. 그렇게 난 그저 나를 찾는 과정을 즐기고 있다. 딱히 어떤 화가라는 기준점이나 푯대를 삼고 있지는 않다. 무엇을 추구한다기보다 나를 표현하는 하나의 즐거움으로 내 삶에 그림이라는 것을 소중하게 안고 가고 싶다. 그런 내 그림을 작가의 작품으로 받아준다면 감사할 따름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처음과 달리 마음이 무거워졌다. 한 여인의 삶 속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세련되고 아름다운 여성작가와 마주한다는 즐거운 활기는 잠시 후 자신의 삶을 보여줄 작가에 대한 무례였다.
소이 김수연 작가. 소중한 가족을 지켜내기 위해 스스로를 태우고 또 태워 재가 될 때까지 희생해야 했던 여인 김수연. 수상작 ‘심안’은 그렇게 태워 없앴던 그녀 자신이었으리라. 무수한 탤런트를 지니고도 가정과 자녀, 그리고 남편을 위해 마지막까지 잘라내야만 했던 그녀 자신이 ‘심안’으로 부활한 것이리라.
난생 처음 붓을 잡았음에도 붓이 저절로 움직였던 이유, 짧은 작품 활동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심사위원을 사로잡은 이유, 그녀의 작품이 그야말로 삶이 통째로 녹아 있는 작가의 작품이어야 하는 이유, 무엇보다 김희라의 아내 김수연에서 작가 김수연으로 당당히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는 ‘심안’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부활시켰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천상 대중 속 인물이여야 하는 숙명을 지녔을지 모를 김수연 작가. 앞으로도 끊임없는 변신으로 우리 앞에 좋은 활동을 보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치안경찰신문/법률신문
백승원 편집부장

<저작권자 ⓒ 치안경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치 / 백승원 기자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