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형이냐 집행유예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파기환송심의 핵심 관전 포인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가 있던 지난해 8월까지만 해도 이 부회장 측은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대법원이 항소심과 달리 “말 3마리는 뇌물”이라고 본 데 이어 “경영권 승계 작업을 위한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고 판단하면서 징역형이 확실시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가 이례적으로 ‘준법감시위원회(준법감시위)의 실효적 운영’을 양형 조건으로 언급하면서 반전의 여지가 생겨났다.
일반 형사재판에서 보기 힘든 장면을 두고 정치권과 시민사회 일각에선 ‘이재용 봐주기’라는 반발이 불거졌다. 법조계에서도 “처음 보는 양형사유” “시켜서 하는 반성은 반성이 아니다” “기업 활동을 개인 범죄의 감형 사유로 삼는 건 무리수”라는 등의 비판적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 부회장 파기환송심의 본질은 ‘양형 심리’다. 이미 드러난 범행의 사실관계를 놓고 최종 형량을 정하는 게 목적이다. 앞서 항소심은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횡령액수를 36억여원으로 판단,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과 말 3마리 매매대금 등을 추가해 범행액수를 86억여원으로 판시했다.
대법원 판단으로 인해 이 부회장의 집행유예 가능성은희박해진 상황이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액수가 50억원이 넘을 경우 선고형은 무기 또는 징역 5년 이상이다. 징역 3년 이하를 선고받아야 집행유예가 가능한 만큼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작량감경’을 하지 않는 이상 이 부회장은 수감을 피하기 어려웠다.
변수로 떠오른 건 ‘준법감시제도’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지난달 17일 “삼성의 준법감시제도는 실질적이고 실효적으로 운영돼야 양형 조건으로 고려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첫 공판에서 “(준법감시제도는) 재판 진행이나 결과와 무관하다”고 했던 데서 미묘하게 말이 바뀐 것이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이 부회장 측에서는 준법감시제도에 명운을 걸 수밖에 없게 됐다.
이 부회장을 기소한 박영수 특검팀은 “재판부 말이 달라졌다” “항간에서 재판부가 이재용 봐주기 명분을 쌓는다는 말이 나온다”며 반발하고 있다. 특검 측은 준법감시위 활동뿐만 아니라 ‘재벌 체제 혁신을 어떻게 할 것인지’ ‘대법원이 추가한 뇌물액수’ 등을 양형 기준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정치권과 시민단체 일부도 “양형 봐주기 공판”이라며 비판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준법감시제도는 법원이 정한 범행 가담 정도나 전과·심신미약 여부 등의 양형 기준 중 ‘진지한 반성’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이를 집행유예로 감형할 수 있는 근거로 삼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고법 부장판사는 “‘진지한 반성’은 자발적이라는 게 전제돼야 하는데, 준법감시위는 재판부가 시켜서 하는 것”이라며 “오히려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는 대법원 판단에 따라 ‘범행 동기’를 따지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그는 “반성을 징역형에서 집행유예로 바꿀 정도로 중요한 양형 기준으로 삼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법조계 관계자는 “개인 범죄에 기업의 준법감시 활동을 감형 사유로 적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재판부가 준법감시제도를 언급하면서 참고하라고 한 ‘미국 연방 양형기준 8장’은 개인이 아닌 기업을 처벌할 때 적용하는 양형기준인데, 이를 이 부회장 사건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취지다.
재판부는 지난 14일까지 준법감시위 활동을 감독·평가할 전문심리위원단을 꾸릴 예정이었으나 특검의 이의 제기로 재판을 연기한 상태다. 재판부는 오는 28일까지 이 부회장 측에 특검의 반박 입장에 대한 재반박 의견을 달라고 했는데, 내달로 예상되는 차회 공판기일에서 이를 두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병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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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안경찰 / 유풍식 기자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