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법률시장에서 막강한 경쟁력을 자랑하는 외국계 대형로펌이 국내시장에서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2012년 법률시장을 외부에 개방한 지 7년째에 접어들었지만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로펌은 30개에 불과한데다 실적도 미비해 글로벌 위상에 견줘볼 때 체면을 구기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외국계 로펌들은 개방은 허울뿐이고 한국 정부가 지나친 규제를 고수하는 탓에 철수를 검토해야 할 형편이라며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지난 4일 법조계에 따르면 글로벌 법률시장의 큰손으로 군림하며 연일 세기의 소송전을 주도하는 외국계 로펌의 국내 위상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연매출 100억원이 넘는 외국계 로펌은 3곳에 불과하다.
외국계 로펌이 국내에서 거둬들이는 전체 매출도 1,000억원을 넘기기 힘들 정도다. 국내 로펌 순위로 7위권 수준이다. 전체 외국계 로펌에 속한 외국인 변호사도 180여명 수준에 그치고 있다.
국내 로펌업계의 선두의 김앤장법률사무소 보다도 적은 인원이다. 국내 법률시장 규모가 3조원 안팎이라는 점에 비춰 보면 명함조차 꺼내기 힘들 만큼 저조한 실적으로 체면을 구기고 있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처럼 국내 시장에서 외국계 로펌이 힘을 쓰지 못하면서 ‘탈한국 러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국계 로펌 맥더모트윌앤드에머리는 지난 7월 한국사무소를 폐쇄하고 국내 철수를 결정했다.
맥더모트는 법률시장 개방 원년인 2012년 9월 한국에 설립인가를 받아 국내에 진출한 1세대 외국계 로펌이다. 이번 철수는 지난해 11월 글로벌 20위권인 대형 로펌인 심슨대처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가 외국계 로펌 최초로 국내시장을 철수한 데 이어 두 번째다. 맥더모트의 한국 철수로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로펌은 31곳에서 30곳으로 줄었다.
철수한 로펌들은 전략적 철수라고 밝히고 있지만, 외국계 로펌들은 한국 정부의 지나친 규제로 성장성이 낮아 주변국인 홍콩이나 싱가포르로 사무소를 옮기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외국법자문사법 제34조에 따르면 외국계 로펌은 한국 변호사를 직접 고용할 수 없고 외국 변호사만 둘 수 있다. 국내 변호사뿐 아니라 법무사, 변리사, 공인회계사도 취업이 금지된다. 이런 탓에 국내 로펌과의 협업하지 않으면 사실상 시장개척에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물론 외국계 로펌의 잇따른 국내 철수에도 성장 가능성을 보고 국내 진출을 타진하는 곳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지난해 말 미국계 로펌 셔면앤드스털링이 한국사무소를 세웠고, 올 4월에는 글로벌 45위 로펌에 선정된 아널드앤드포터케이숄러가 국내에 진출했다. 아널드는 앞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 한국 정부가 벌인 투자가국가소송(ISD)에서 우리 정부의 법률자문을 맡은 바 있다.
그러나 외국계 로펌의 철수를 바라보는 로펌업계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한국 법률시장에 대한 투자가치나 메리트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탈한국 러시가 이어진다면 결국 국내 법률서비스 산업의 외연 확장이나 성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외국계 로펌 출신 변호사는 “한국 경제가 더욱 커져 법률시장이 확대되거나 외국로펌이나 합작법무법인(조인트벤처)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풀려 법률시장 개방 속도가 빨라지지 않는다면 외국계 로펌 철수는 앞으로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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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안경찰 / 유풍식 기자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