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로 없던 산 경사면에 엄청난 빗물 고여 석탄재 토사 ‘와르르’

부산 구평동 산사태 전문가가 분석한 사고 원인

지난 3일 오전 9시 부산 사하구 구평동의 한 야산에서 산사태가 일어나 40년간 마을에서 살아온 일가족 포함 4명이 토사에 매몰돼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 태풍 ‘미탁’이 한반도를 관통한 지난 3일 부산 사하구 구평동 산사태 사고 현장. 쏟아져 내린 토사가 주택과 식당 등 건물을 덮쳐 마을 주민 4명이 매몰돼 사망했다. 전문가들은 배수로 부실 공사와 석탄재 매립을 이번 산사태의 주된 원인으로 분석하고 있다.

소방당국은 사고 발생 이후 33시간의 구조 작업 끝에 흙더미에 매몰된 4명을 발견했으나 모두 숨진 상태였다. 국내 최고 산사태 전문가로 통하는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본보 취재진과 찾은 산사태 발생 지점에서 이번 사고를 ‘인재(人災)’라고 분석했다.


■산사태 키운 허술한 배수로
지난 4일 오후 3시 30분께 이 교수와 찾은 구평동 산사태 발생 지점 야산 능선부. 사고 주택 위 200m 거리에 위치한 이곳에는 폭 2.5m 길이 약 20m의 콘크리트 배수로가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배수로는 기능을 상실해 ‘물길’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야산 정상에 위치한 예비군 훈련장 아래 비탈면에서 빗물과 지하수가 섞여 흐르고 있었지만, 배수로를 통하지 않고 흙과 돌 사이로 쏟아져 내려왔다. 또 콘크리트 배수로와 훈련장이 연결돼 있지 않아 이 사이 약 50m 구간은 물길 없이 뚝 끊긴 상태였으며 배출되지 않은 물이 배수로 위쪽에 연못처럼 고여 있기도 했다. 집중호우 시 입자 간 점착력이 약해 빗물에 취약한 석탄재 지층이 물을 머금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교수에 따르면 이 지역 일대는 물을 흡수하는 성질의 화산암으로 이뤄져 있다. 땅에서 꾸준히 수분을 흡수해 물에 취약한 석탄재 매립층이 서서히 붕괴할 조짐을 보여 왔던 것이다.


사고 주택으로부터 300m 위에 위치한 훈련장 아래 산 사면. 이곳에는 땅이 머금었던 물을 뿜어내는 역할을 하는 ‘수평 배수로’가 단 하나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게다가 토사 유출 방지 등 사면 저항력 강화를 위해 철근을 사면에 주입하는 공법도 적용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교수는 가파른 골짜기 위에 훈련장이 들어선 데다 배수로 부실 공사로 물길 차단과 지반 약화 등을 야기했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바로 위에 군부대가 있고 배수에 문제가 있었던 점은 2011년 16명이 사망한 우면산 산사태와 동일한 구조”라며 “물길이 차단돼 지반이 약화한 데다 석탄재가 촉진제 역할을 하면서 산사태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배수로는 전혀 관리되지 않았고 설치 또한 굉장히 허술해 체계적인 관리 주체의 일원화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짚었다. 대한토목학회 119토목구조대 측도 배수로 문제와 석탄재 매립을 사고 원인으로 꼽아 이번 산사태가 ‘인재’라는 점에 무게를 실었다.


■관할기관은 모르쇠
이번 사고의 맹점은 배수로 관리와 석탄재 매립이다. 지난 4일 부산시가 대한토목학회 측에 산사태 원인 조사단 구성을 요청해 추후 두 달여간의 정밀 조사가 실시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문제점을 두고 구청과 군 당국은 책임과 관할을 회피하는 모양새다.


신평 예비군 훈련장은 40여 년 전인 1980년에 조성돼 시공·설계와 관련된 서류를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사하구청과 군 당국의 설명이다. 통상 석탄재 등을 야산에 매립 시 구청은 관련 서류를 접수·인지하게 되어있으나 현재 구청 측은 사실관계 확인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구청 관계자는 “석탄재 등이 관내 야산에 매립되면 구청에서 이유와 주체 등을 확인할 의무가 있으나 워낙 오래 전이라 알 수 없다”며 “산 사면 아래에 설치되는 배수로는 구청에서 관리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군 당국은 산사태 원인을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군 관계자는 “군 자체적으로 조사하고 있지만, 자료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식 조사 결과가 나오면 그에 맞는 후속 조치에 나설 것”이라면서 “지금은 피해 복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대한토목학회 정진교 교수는 “배수로 문제와 석탄재 매립을 통해 이번 사고가 인재라는 점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며 “배수로 관리 여부와 석탄재 매립 주체 등이 책임 소재를 가리는 관건인데, 훈련장 내 연병장 실사 조사와 배수로 정밀 조사를 통해 정확한 원인을 규명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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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 백승원 기자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