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 입암리 6·25전사자 발굴유해 신원확인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12년도 포항시 입암리에서 발굴된 6·25전사자 유해의 신원을 고(故) 김종술 일병으로 확인됐다.

2012년 3월 12일, 국유단과 해병 1사단 장병들의 노력으로 발굴된 6·25전사자 유해의 신원이 10년 만에 고 김종술 일병으로 확인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 191번째 고 김종술 일병 유해의 발굴 당시 사진

이로써 2000년 유해발굴사업이 시작된 이후 총 191분의 6·25전사자 유해에 대한 신원이 확인되었다.

발굴 당시 고인은 완전유해의 형태로 수습되었다.

6·25전쟁 당시 개인호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을 해병 1사단 장병들이 기초발굴하던 중 고인의 우측 대퇴골 일부가 발견되면서 전문 발굴병력이 투입되었고, 주변을 확장하여 발굴한 결과 전신의 대부분이 잔존한 완전유해의 형태로 수습되었다.

또한, 고인의 유해 주변에서 유리병 조각 등 4종의 유품이 함께 발굴되었지만, 그러한 유품만으로는 신원을 특정할 수 없었다.

이번 고인의 신원확인은 유해발굴사업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를 접한 유가족이 고인의 6·25전쟁 참전 사실을 국유단에 제보하면서 이루어졌다.

고인의 장남 김석만 님은 2020년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국유단이 집중적으로 실시한 홍보를 통해 유해발굴사업을 접하였습니다. “아버지가 6·25전쟁에 참전하셨지만 유해는 찾지 못했다”는 작고하신 어머니의 말씀을 떠올려 본인이 직접 6·25 전사자의 유가족임을 국유단에 제보하였고, 국유단 탐문관이 자택을 방문하여 유전자 시료를 채취하였다.

국유단은 채취된 제보자의 유전자분석을 통해 가족관계일 것으로 추정되는 유해를 특정할 수 있었고, 정밀분석을 거쳐 2012년 포항 입암리에서 발굴된 유해와 제보자가 부자관계임을 확인하였다.

고인은 1926년 9월 14일, 경북 김천시에서 3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고인은 잡화문구점을 운영하는 부친을 도우던 중 1946년 배우자이신 고(故) 조일순 님과 결혼하여 슬하에 3남을 두었으며, 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9월 4일 아내와 두 명의 젖먹이 아들, 태중의 막내아들을 뒤로한 채 대구의 제1훈련소로 입대하였다.

고인은 8사단 소속으로 영천지구전투(1950. 9. 5. ~ 22.) 이후 반격하는 과정에서 전사하였다.

영천지구전투는 낙동강 방어선의 일부인 영천이 북한군에게 피탈되자, 국군 제8사단이 북한군을 저지한 후, 국군 제7사단과 인접사단이 3일 동안 교전하여 영천지역을 탈환한 전투이다.

고인이 소속되었던 국군 제8사단은 부여된 임무를 완수하며 북진의 선도적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지만, 고인은 영천지구전투 이후 반격하는 과정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고 김종술 일병의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는 오늘(5. 17.)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장남 김석만 님의 자택에서 고인의 참전 과정과 유해발굴 경과를 설명하고, ‘호국의 얼 함’을 전달하는 내용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6·25전사자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국민 여러분의 참여가 필요하다.

이번 신원확인은 6·25전사자의 유가족이 유해발굴사업을 접하고, 유전자 시료 채취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처럼, 유해발굴사업은 6·25전사자 유가족의 유전자 시료 채취 참여가 매우 중요한 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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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 윤순이(라미) 기자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