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현성, 조선시대 지어진 군사 요새

보성, 난중일기·명량해전 재조명

▲ 조성면 고내마을 조양현성 옛터

보성군 조성면 우천리 고내마을에 있는 조양현성(兆陽縣城)이 조선시대의 제성 축조기법으로 지어진 군사 요새인 것이 밝혀졌다.


조양현성은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명량해전 당시 조선수군의 삭량을 구한 군량미 저장소(조양창)가 있었던 만큼 중요한 사적으로써 복원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제시된 바 있다.


지난 4일 보성군에 따르면 전남대 문화유산연구소의 유적조사 용역 결과, 내성 일부와 외성의 서벽·남벽·북벽 일부, 성돌, 성곽 유구 등과 함께 2개의 샘을 확인했으며, 조양현성이 총 1.26㎞ 둘레의 타원형 석성임이라는 것을 파악했다.


조선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조양현성에 대해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2천7 55척이요 높이가 7척이고 그 안에 우물 2개와 군창이 있다’고 묘사하고 있다. 조선후기 사용했던 포백척 기준(46.73cm)으로 환산하면 조양현성 둘레가 1.26km라는 연구진의 조사결과가 충분히 뒷받침 된다.


조양창은 임진왜란의 일등공신 이순신 장군과의 인연도 깊어 역사적 의미가 남다르다. ‘난중일기’ 1597년 정유년 8월 9일 기록 ‘저녁에 보성 조양창(현 조성면 고내마을)에 이르니 사람은 하나도 없고 창고 곡식은 봉한 채 그대로였다. 군관 4명을 시켜 지키게 하고, 김안도의 집에서 잤다.’는 대목은 명량대첩으로 향하는 조선수군의 군량미가 보성 조양창에서 보급됐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조양현성에는 600석 규모의 군량미 저장소가 있었다.


보성군은 유적조사를 통해 발견된 우물 2군데 중 한 곳을 이순신 장군과 의병들이 샘물을 마신 곳이라 해 ‘이장군 샘’으로 명명하고 우선 복원하기도 했다.


보성군은 수군을 폐하고 육군으로 합류하라는 선조의 명에 이순신 장군이 올린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라는 ‘금신전선 상유십이’ 장계가 쓰였던 보성 열선루를 비롯한, 상유십이 공원, 이순신 장군이 전라 우수영을 향해 출항한 군영구미 등 보성의 역사문화자원을 연계해 조선수군과 보성의병의 활약상을 역사문화 관광의 장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한편, 보성군은 임진왜란 때 700의병을 일으킨 죽천 박광전(1526~1597)선생과 전라좌도의병장 삼도 임계영(1528∼1597) 장군을 비롯해 머슴살이 의병장 안규홍, 독립운동의 아버지 홍암 나철선생, 독립운동 선각자 송재 서재필 선생 등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나라를 구하고자 분연히 일어난 의향의 고장으로, 앞으로도 의병 역사 유적의 발굴과 복원에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남도의병 역사를 알리고, 의병유적을 적극 발굴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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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 백승원 기자 기자 다른기사보기